혐오스러운 치과 과잉 진료와 그 체험

  경제학 용어로, '역선택'이라는 용어가 있다. '역선택'이란, 중고자 딜러나 치과의사 처럼 고객이나 내담자는 알기 힘든 전문적인 정보를 알고 있는 판매자 및 치료자와 같은 위치의 사람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전문지식을 이용하여, 그에 비해 정보와 지식이 결여되어 있을 일반 구매자들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현상을 가르키는 용어이며,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도덕적 해이'와도 연결된다. 그리고,  굉장한 화두가 되었던 '과잉진료', 그것도 '치과의 과잉진료'는 완벽한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의 대표격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치아! 사람에겐 눈 다음으로(어쩌면) 중요하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신체 부위가 바로 이 '치아'일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인간의 생명과 같은 신체 부위를 대상으로 자동차 딜러만도 못한 양아치 짓을 하는 것 만큼 끔찍한 일이 과연 있을까? 있다. 많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치과 과잉진료' 이상은 아닐거다. 치아가 파절 됐단다. 파절? 현학적인 전문용어는 치우고, 그냥 치아가 깨졌다는 뜻이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었다. 치아가 깨질일이 있을까? 알고보니, 충치에 의해서도 치아가 깨질 수는 있단다.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분명 충치는 아니라고 한다. 그럼, 무조건 어떤 힘에 의한 깨짐일 수 밖엔 없다. 치아와 뼈는 같은 구성성분을 이루고 있으며, 아니, 치아가 뼈보다 더 단단하다. 이 뼈보다 단단한 치아가 깨질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큰 힘이 작용되야 한다는걸까? 누군가는 딱딱한 음식을 먹으면 치아가 깨질 수도 있다는데, 맞다! 돌이나 쇠젓가락을 잘못 씹으면 치아는 분명 깨질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복싱이나 격투기와 같은 치고 박는 운동을 하다보면 치아가 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평화 주의자지, 폭력을 쓸 일이 없다. 그럼, 역도나 파워리프팅 같은 걸 하다가 순간적인 힘을 쓰기...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영문학과 교수가 번역하는 게 과연 옳을까?

 


 어느 출판사라 꼭 집어 말하진 않겠지만(그래도 아마 다 눈치채시겠지만), 아마 대한민국 출판사 중, 특히 문학 전집으로는 역대급이자, 1등이라고 평가받는 출판사에서 출판된 윌리엄 셰익스피어나 그와 같은 대문호들의 번역본들을 보건데, 번역가들은 으례 하나같이 최고, 일류 대학 출신이나, 그런 명문대나 혹은 대학교의 교수 수준에 학력과 학식을 갖추고 있다. 


나는 이게 참 의아하다.

문학, 특히 극작이나 소설은 논문이나 학술에의 영역이 아닌 순수한 '예술적 영역'인데, 어째서 대학교수와 같은 학자들이 이 예술을 번역하는걸까?


물론, 영문학을 전공했거나, 그 작가의 언어와 문학을 충분히, 박사학위 정도로 공부한 학자나 교수들 수준이면 그 책에 대한 전면적인 지식과 학술적 이해에는 그 누구보다 밝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영화 평론가가 영화 감독을 한다고 뛰어난 작품을 쓰는것도 아니고, 영화학과 교수가 어벤져스 같은 영화를 번역한다고해서, 뛰어난 번역이라고 극찬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꼭,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문호의 예술작품은 마찬가지 이유로 응당 정당하다고 할 수 없음에도, 영문학 교수가 맡아서 번역을 해야 하는가?

솔직하게 말해서.


그래서 그런지, 진짜 별로다.

영문학과 교수가 미션임파서블을 번역하고, 해리포터를 번역하고, 반지의 제왕을 번역한다고 생각해보라. 그 특유의 딱딱하고, 재미없는 학술적 어투로 논문을 쓰듯 번역된 책들을 읽을 수 있을까? 그런데 어째 윌리엄 셰익스피어 만큼은 예외로 쳐주는 듯 싶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현대에 이르러 고전이라 칭송받기 이전에 최초에는 그저 재밌는 연극, 오락거리였을 뿐이고, 그의 영어 원서는 농담과 유머와 기발함, 유쾌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니까,

옛날 옛적 어벤져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이라는 이유만으로, 또 학술적으로 접근하여 재미를 몽땅 죽이는게 과연 올바른걸까? 앞으로 100년뒤에 우리네 후손들이 어벤져스를 학술적으로 하나하나 주석을 달며 공부한다고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비극적인가! 


이렇게, 예술 문학은 무슨 무슨 학과의 교수님이나 박사학위 소지자가 아니라, 그들과 같은 극작가나 소설가가 그것도, 실제 검증과 신뢰를 받는 그런 재기 넘치는 작가가 번역하는 게 옳다고 나는 생각하고, 주장한다. 

어째서, 왜 셰익스피어의 극작들을 단순 즐거움을 위한, 공연 관람객들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오락물을 단순히 시간이 오래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교수들에게 번역을 위임하여 따분하고, 재미없는 도저히 내가 논문을 읽는건지, 재기발랄한 셰익스피어를 읽는건지 도통 알 수가 없게 하고, 그래서 화와 짜증이 치밀게 하는 것인가? 


허례허식.

허세.


지적우월감 따위를 이유로, "셰익스피어는 영문학 교수가 학술적으로 설명하는 게 더 그럴듯하잖아?" 하는 읽는 이의 패션과 지적만족을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얄팍한 소비심리를 겨냥해서 꼭 이렇게 할 필요가 있었을까? 


장담컨데,

셰익피어스를 한국어로 번역한 책을 그대로 다시 영어로 번역해서 미국인들에게 읽으라고 한번 줘본다면, 한국 수능 영어를 보고, 얼굴을 찌푸리는 미국인들의 표정을 또 다시 볼 수 있으리라.


나는 법까지는 안가더라도, 행정적으로 셰익스피어든 누구든 대문호의 작품은 그들과 똑같은 작가가 번역하도록 해야 한다고 우기고 싶다. 작가들이야말로, 자신들의 문장 한줄, 사용하는 단어 하나 하나 독자들에게 재밌게, 술술 읽히기만을 심사숙고하며 글을 쓴다. 그렇게 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번역해야, 읽는 이들도 마찬가지에 재미를 느낄 수 있을건데.

이와 거리가 영 먼, 교수들이 번역을 하니, 그냥 시험 문제지에 나오는 지문 수준에 번역본이 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일단 우리 한국인들.

명문대 나온 교수님들이 번역했다기에 그냥 넙죽 대가리만 꾹 박고, 찍 소리도 못한 채, 달달달 교양서적이라니까 읽기만 해댄다. 이 책이 재미없다고, 나처럼 항변이라도 하면 눈을 세모모양으로 뜨면서 손가락질을 해대고만 있는 것이다.


참 안타깝다.

울적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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