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러운 치과 과잉 진료와 그 체험

  경제학 용어로, '역선택'이라는 용어가 있다. '역선택'이란, 중고자 딜러나 치과의사 처럼 고객이나 내담자는 알기 힘든 전문적인 정보를 알고 있는 판매자 및 치료자와 같은 위치의 사람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전문지식을 이용하여, 그에 비해 정보와 지식이 결여되어 있을 일반 구매자들을 착취하고, 이용하는 현상을 가르키는 용어이며,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도덕적 해이'와도 연결된다. 그리고,  굉장한 화두가 되었던 '과잉진료', 그것도 '치과의 과잉진료'는 완벽한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의 대표격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치아! 사람에겐 눈 다음으로(어쩌면) 중요하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신체 부위가 바로 이 '치아'일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인간의 생명과 같은 신체 부위를 대상으로 자동차 딜러만도 못한 양아치 짓을 하는 것 만큼 끔찍한 일이 과연 있을까? 있다. 많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치과 과잉진료' 이상은 아닐거다. 치아가 파절 됐단다. 파절? 현학적인 전문용어는 치우고, 그냥 치아가 깨졌다는 뜻이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었다. 치아가 깨질일이 있을까? 알고보니, 충치에 의해서도 치아가 깨질 수는 있단다.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분명 충치는 아니라고 한다. 그럼, 무조건 어떤 힘에 의한 깨짐일 수 밖엔 없다. 치아와 뼈는 같은 구성성분을 이루고 있으며, 아니, 치아가 뼈보다 더 단단하다. 이 뼈보다 단단한 치아가 깨질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큰 힘이 작용되야 한다는걸까? 누군가는 딱딱한 음식을 먹으면 치아가 깨질 수도 있다는데, 맞다! 돌이나 쇠젓가락을 잘못 씹으면 치아는 분명 깨질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복싱이나 격투기와 같은 치고 박는 운동을 하다보면 치아가 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평화 주의자지, 폭력을 쓸 일이 없다. 그럼, 역도나 파워리프팅 같은 걸 하다가 순간적인 힘을 쓰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민음사

 


정말로 위대한 문학이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헤밍웨이와 도스토 예프스키 단 둘 또는 구태여 윌리엄 포크너까지 포함하여 셋 뿐인데, 그중에서도 나는 도스토 예프스키를 가장 최고로 친다.


소설적 재미면 재미, 철학과 사상이면 철학과 사상, 단순한 감동을 넘어 그냥 인류사적 여명을 여는 작품이다. 아마 내가 이렇게까지 극찬을 하는 문학 작품은 최소한 이 블로그에선 이 작가와 이 책이 유일할 것이다(내가 다음에 헤밍웨이나 톨스토이 정도의 책을 비평하지 않는 이상).

솔직히 말해,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문학동네) 보다는 죄와 벌이 나는 더 문학적으로나 철학, 사상적으로 특히 도스토 예프스키적으로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째서인지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죄와 벌보다는 평가가 훨씬 더 좋다.


그 이유로는 아무래도,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이 결국 도스토 예프스키의 말년에 쓰인 작품이기에 도스토 예프스키의 사상적 정수이며, 정점으로 정리되기 때문이리라. 

그에 반해, 죄와벌은 비교적 초기에 쓰여진 작품이라 아직 그의 사상과 주장이 무르익지 않은 시작점에 서 있는 작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리라.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이 작품은 그렇기에 오히려 더 젊고 패기넘치던 도스토 예프스키와 가장 가까운 그래서 더 날것이며, 솔직하고 순수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주인공이 이야기하는 '비범한 사람으로의 <넘어감>'을 나는 단순한 니체의 '초인 사상' 따위에의 것으로 치환 가능한것이 아닌, 우리 인간이 '신을 버리고, 도덕과 윤리, 전통적인 양심을 거부한채, 나폴레옹과 같은 철저한 이성과 합리, 그 성공만을 위한 살인과 학살도 자행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도덕과 윤리, 양심을 죽일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단순한 '개인에의 일탈이나 초월적 신앙'이 아닌, 우리 전 인류사적 시각으로 이해한다.

이는, 분명 '조던 피터슨'의 주장이기도 하지만.


 참고로, 나는 '조던 피터슨'의 사상이나 시각을 공감하거나, 지지하진 않는다. 다만 어쨌든 그가 세계적인 니체와 도스토 예프스키를 연구한 학자이며, 하버드 대학교수로써 이와 관련된 논문이나 학술적 주장을 한 것을 토대로만 (이 관점은 심히 공감하여) 이야기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솔직히 죄와 벌을 읽고 나서야, 조던 피터슨의 그러한 주장(즉, 니체와 도스토 예프스키는 각각 히틀러와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의 도래와 신과 같은 전통적 윤리관을 거부한 채, 극단적인 과학, 이성주의에의 맹신을 경고하고, 이에 대항하여 각각 초인사상과 기독교로부터의 회귀를 주장하였다는 주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도스토 예프스키는 주인공을 우리 인류의 대표격으로 상정하고, 우리가 그토록 신을 (니체의 표현대로) 죽이고, 우리가 그렇게 죽인 다음부터는 완벽한 과학, 이성주의를 표방할 때. 과연 나폴레옹 처럼 완벽한 성공과 승리를 위해 살인과 학살, 모든 범죄적 행태를 (히틀러나 스탈린처럼) 자행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인류에의 특히 당시 시대에의 비극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히틀러와 스탈린이 결국 실패했듯, 주인공 또한 실패한다. 그리고 다시 성경을 집어들며(이 부분이 바로 도스토 예프스키가 기독교에의 회귀가 인류의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함) 우리는 유발 하라리가 본인의 저서인 <사피엔스>에서 설명한대로, 결국 종교라는 매개체가 우리 문명 발전에는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천재적인 사상가가 또 있을까?

물론, 기독교에의 회귀라는 그의 제안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나는 기독교도가 아니고, 기독교에 그렇게 우호적이진 않지만, 그럼에도 이전에 포스팅한 '기독교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를 읽어 주시라.)


결국 우리 인간에의 구원은 종교에 있음을, 아무리 우리가 종교를 미개하니 어쩌니 손가락질 한다해도 결국 우리 인간의 문명과 존재는 종교에 귀인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소설 책, 아니 지극히 솔직하고, 훌륭한 인간 사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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